위 대 한   순 간

 

  영 희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새롭게 취업할 때 가끔 축하 카드에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 되거라’라고 쓰는 일이 있다.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 – 참으로 막연한 말이다. 사실 그렇게 쓰면서도 나 자신은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는 건지 잘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선생으로서의 도리인 것 같아 무조건 그렇게 쓴다.

 

그런데 마침내 어제 재용이가 그 말에 제동을 걸었다. 내가 가르친 야학 졸업생인데, 정비공으로 취직이 되어 속초로 내려간다길래 선물로 책을 주며 앞에 그 말을 써주었더니 대뜸 말했다.

“에이,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줘요.”

신학대학에 가서 신부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재용이는 작년에 수능고사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고, 지난 달 지원자 모임에서 담당 신부님이 사제의 길이 어렵겠다고 조심스럽게 포기를 권고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오랫동안의 꿈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선생님, 저는 신부님이 되어 위대한 일을 많이 하고,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한숨과 함께 재용이가 말했다. 자동차 정비공이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겠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물론 신부님도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겠지만 정비공도…” 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좌절된 꿈에 슬퍼하고 있는 재용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문득 토니를 떠올렸다.

 

유학 중 내가 살던 기숙사의 경비아저씨 토니는 나이가 한 예순쯤 되었는데 전직이 콜택시 기사였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동향 출신이라는 그는 낙천적인 성격으로 파바로티처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아침이면 우리 기숙사 식구들은 그가 밖에서 부르는 ‘오 솔레미오’ 소리에 깨곤 했다. 그는 가끔 우리 방에 들러 함께 차를 마시곤 했는데, 언젠가 우리들에게 자신이 기사 시절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에 겪은 한 일화를 얘기해 주었다.

 

그날 방 당번이었던 그는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늦게까지 파티를 한 사람이 집에 가기 위해 부른다고 생각했다. 가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경적을 한두 번 누르고 가버렸겠지만 그날 밤 그는 일부러 차에서 내려서 벨을 눌렀다.

“잠깐만요.” 아주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마룻바닥에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마치 19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아주 나이든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방에는 가구가 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이 가방 좀 들어 주겠수?” 할머니는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을 나오면서 할머니는 문간에 놓인 사진틀과 앨범이 가득 담겨 있는 상자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할머니 그것도 가져가실 거예요?” 할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냥 두고 갈 테야.”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할머니”

“괜찮아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아. 지금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순간 토니는 뒷좌석의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의 이슬이 반짝였다.

“식구가 하나도 없어서. 의사 선생님이 인제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우.”

토니는 요금 미터기를 껐다.

“어떤 길로 갈까요, 할머니?”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 거리를 드라이브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걸로 일하던 빌딩, 지금은 가구공장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댄스파티에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났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 라고 말했다. 침묵 속에서 토니는 할머니가 준 주소로 차를 몰았다. 간호사들이 할머니를 맞아 휠체어에 앉혔고,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안아 작별인사를 했다.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아주 행복 했다우.”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를 두고 토니는 건물을 나왔고, 뒤로 문이 ‘찰칵’하고 닫혔다.

 

“그건 마치 삶과 죽음 사이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았어.” 토니는 말했다.

“나는 그때 집으로 가지 않고 한참 동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때 내가 그냥 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당번이 걸려 심술 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난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 거야.”

 

우리는 우리의 삶이 아주 위대한 순간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순간, 내가 나의 모든 재능을 발휘해 위대한 일을 성취할 날을 기다리며 산다. 내게는 왜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고 지치고 슬퍼한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왔다 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심히 건넨 한 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대통령에게도, 신부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자동차 정비공에게도 모두 골고루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