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미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그때의 담임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인자하셨습니다.

남자 선생님이셨는데요,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이 컸었지요.

말씀도 별로 없으시고 별로 웃지도 않는 약간은 무서운 이미지였지요.
선생님께서는 늘 우리들에게 종례시간에 당부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을 다 얻는다 하여도

결코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라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선생님께서 신임을 하는 사람을 선발하셨습니다.

누구누구 이름을 부르고, 너희들은 내가 믿는 사람들이다... 하셨죠.

이번 달에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으면, 다음 달에라도 불리워지기 위해서

서로들 열심히 맡은바 일에 성실하게 임하게 되었던 건 당연한 거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이었습니다.

방학 숙제로 나온 문제집을 친구와 함께 문방구에서 사 들고 등교를 했습니다.

책상 밑에 문제집을 넣어 놓고 운동장에서 행사 끝나고 신나게 놀다가

교실로 와본 저는 그만 문제집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랬었지요.
이리저리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고,

이름조차 써놓지 않은 문제집을 내 것이라 우길 수도 없고...

망연한 저는 집에 가서 혼날까 봐 두려워 만 하고 있었습니다.

사는 게 그리 넉넉치 않았었다고 기억됩니다.
같이 문제집을 샀던 친구가 선생님께 그 사실을 말해주었고,

그 말을 전해들은 선생님께서는 무서운 인상이 더 굳어지셨습니다.

종례시간에 선생님은 급우들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끓고서 손들라고 했습니다.
-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구나.

내가 그렇게 신뢰에 대해서 가르쳤는데 어째서 우리 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참으로 부끄럽구나.

이제라도 솔직히 손들고 잘못했다 하면 더 이상 탓하지는 않으마-
그러나 손을 드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 부주의로 인해서 집에도 못 가고 벌서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저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어찌 할 바를 몰라했었구요.

아무리 다그쳐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선생님은 저를 교무실로 오라하고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보냈습니다.
교무실로 들어서니 선생님께서 저에게 문제집을 내미시더군요.
-이거 내가 보려고 사놓은 것인데, 네가 가져가거라-
-선생님, 이 것은 선생님꺼잖아요? 선생님껄 제가 왜?...

그냥 엄마한테 말씀 드려서 다시 살께요.-
-아니다, 내가 주는 이것을 원래 네가 산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라.

그리고 네 것을 누가 훔쳐갔다는 생각을 잊어버렸으면 좋겠구나.

사람이란 한 번 좋지 않은 일을 당하면 늘 마음속에 상처로 남거든.

너에게 그런 좋지않은 기억을 갖게 한다는 것이 내 마음에 걸리는구나.-
선생님의 그 말씀에 저는 문제집을 받아 들고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는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그 후로 저는 문제집을 잃었다는 생각보다는

선생님의 좋은 가르침을 얻었다는 생각으로 지내왔습니다.

5학년이 끝나고 6학년으로 진급할 즈음에 선생님께서는 타 학교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함자를 지금도 모릅니다.
지금쯤 무척 연로하셨겠지요. 뵙고싶습니다.... 선생님.

그 때의 친구들 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운 마음 간절하지요.
어릴 때의 작은 일 하나가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 후로 제 가슴속에서 늘 화두처럼 자리하고 있는 말이

'신뢰 받는 사람'이 되라는 선생님의 교훈입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 -사람과 사람 사이의-이라 생각하지만,

그 사랑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신뢰(믿음)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아마도... 사랑의 전제 조건이 믿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욕망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입니다.
지금도 그 선생님의 엄숙하고 덥수룩한 얼굴이 떠오르면

'네 마음속에 상처가 남지 않기만 을 바랄 뿐이다.' 라고 하시며

입술을 반쯤만 올리는 미소를 잊지 못합니다.
그 무서웠던 선생님의 미소는 언제나 내 마음에 봄처럼 푸릇하게 살아납니다.
님들에게도 행복한 날이 되길 바랍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 훈훈한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