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치고 폭우 내리던 날의 추억

 

머리통이 툭 뛰어 오른 도꾸뿔이 칠구.

너무도 못 살아서 아주 어릴 적에는 웃통은 옷을 걸치고 아랫도리는 불알을 그대로 내놓고 살다가 고추가 어느 정도 자란 5살부터는 아랫도리옷은 걸쳐도 웃통은 늘 벗고 다니던 기철이.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너무나 가난하여 먹지를 못해서 영양실조로 유독 배꼽이 돌복숭아보다 더 튀어 오른 쪼대기 봉구.

소 먹이다가 뱀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끝까지 도망치는 뱀을 잡아서는 뱀 꼬리를 빙빙 돌리면서 아이들의 혼을 빼면서 좋아하는 뱀달이.(본 이름은 석달이다)

말 못하고 듣지 못하지만 양철영감 참외밭에 참외서리 갈 때는 컴컴한 참외밭에 엎드린 양철영감 제일 먼저 발견하는 밤눈이 밝은 벙어리 창이.

 

여름방학 때는 매일 미질마실 이 부자네 집에서 다 키워서 송아지 낳으면 큰 소는 돌려주고 그 송아지는 키운 사람이 갖는 일명 “배 먹이 송아지”를  한 마리씩 몰고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살미산에 올랐다.

마을에도 소 풀을 먹일 만한 개울 둑, 혹은 밭둑이 있지만 다 임자가 있어 소에게 조금이라도 풀을 먹이면

“거짝에(그쪽에) 우리 밭둑에 누구로! 어-잉?”

고함소리가 나고... 서둘러 송아지를 끌고 도망쳐야 하는, 소위 밭둑에 풀도 다 임자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예 조금 멀어도 임자가 없는 살미산까지 송아지를 몰고 가서 소를 먹이고 소꼴도 해서 꼴멍에 넣어서 집으로 메고 돌아왔다.

큰비가 오기 전에는 늘 바람 한 점 없이 날이 무더워 고추들이 추-욱 늘어지고 똥개들은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서도 해를 길게 빼물고 헉헉 거렸다.

 

그 날도 점심을 먹자말자 송아지를 살미산으로 끌고 가서 산기슭에 풀어놓고 낮으로 소 풀을 열심히 하던 아이들은 등줄기가 땀으로 다 젖었고 목이 말랐다.

“억시기도 덮다.”

기철이가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를 엎드려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봉구 녀석은 찬물을 어프거리며 머리에 퍼부었다.

꼴망태에 다들 꼴을 열심히 쑤셔 박아 저마다 둥그런 꼴짐을 만들어놓자 또 칠구란 놈이 희죽거리면서 쪼대기 봉구에게,

“야, 쪼댁아... 우리 소꼴치기 하자!” 소리를 쳤다.

봉구는 비록 쪼대기이지만 풀 베는 낫질은 일품이라서 늘 소 풀을 제일 많이 했다.

그런 봉구놈 소 풀을 자치기나 낫치기를 하여 또 따먹을 셈으로 칠구놈이 그러는 것이다.

“나, 소꼴내기 안해”

“한판하자, 이 쪼댁아!”

벙어리 창이 눈도 빛났다... 자치기는 창이가 가장 잘했다. 운이 좋으면 한 아름 더 많이 소 풀을 벤 봉구 녀석 소 풀을 따먹을 기회이기 때문이다.

늘 봉구 편을 드는 기철이가,

‘아, 이누마들아, 소꼴내기는 하지마라.. 봉구는 쪼대기 아이가.”

“맞다... 하지마자.” 뱀달이가 기철이 말을 거들었다.

칠구가 낫으로 자치기를 다듬고 봉구가 그것을 보고 실실 웃으면서 뒤로 물러서는 그 순간....

 

살미봉 서편에서,

“우르르 콰광! ”  하는 대포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서 서편을 처다 보니 어느새 검은 구름이 서편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으면서 살미봉으로 마-악 몰려오고 있었다.

“저것 봐래이. 구름이 새카만네!”

뱀달이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자, 기철이가 꼴멍을 어깨에 휘둘러 매고는 송아지 꼬삐를 잡고,

“어서 산을 내려가자... 소낵비 오겠다!” 소리를 질렀다.

벙어리 창이도 검은 구름을 가르키면서 놀란 듯이

‘어버버, 웨 어버.“ 소리를 질렀다.

산골 아이들은 알았다. 해마다 여름철 서북풍 바람을 타고 살미봉 서편으로 새카맣게 몰려오는 검은 구름은 틀림없이 소낙비를 몰고 오는 구름이다.

구름의 이동이 워낙 빠르고 마을은 제법 멀어서 자칫하면 소낙비를 맞을 것이 뻔하다라는 것을 잘 안다.

봉구도 칠구도, 뱀달이, 창이.... 각자 꼴망태를 메고 자기 송아지를 몰아서 살미봉을 서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르르- 콰광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깝게 들리자 제일 앞서가든 칠구 녀석이,

“뛰자!” 소리치면서 무거운 꼴망태를 어깨에 맨 채로 뒤뚱거리며 뛰기 시작하자 송아지도 뛰고 창이도 뛰고 뱀달이도 겁먹은 얼굴로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산 끝머리에 있는 공동묘지를 허둥거리며 지나갈 때 드디어 후두 둑 빗방울이 듬성듬성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동묘지를 돌아서서 머물 댁 깨밭을 지나갈 때 순식간에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갑자기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하늘에 섬광이 번쩍 칼날처럼 튀고 짜짜-아 작 하더니 곧이어 하늘이 통째로 쪼개지듯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벼락 불빛이 작평마실 뒤쪽으로 떨어졌다.

옷은 금새 다 젖어 물이 줄줄 흐르고 길섶에 버드나무는 송두리째 뽑히는지 하늘로 실가지를 내동댕이치고 연이어

“따-다악 찌-익... 우르르 쾅!” 벼락이 따발총 쏘듯이 마구잡이로 떨어졌다.

제일 앞에 칠구, 그 뒤에 봉구, 기철이, 창이, 뱀달이,.....

아이들은 겁에 질린 채로 정신 없이 절반 미친 아이들처럼 헉헉거리면서 마을로 달렸지만 소낙비를 앞지르지 못하고 결국 시커먼 어두움 속으로 거센 폭풍우 바람에 떠밀리다시피 양철영감 논두렁길로 들어섰다.

 

마을은 아직 멀었다. 팽나무가 있는 천방길을 따라서 가면 돌아가는 길이므로 가로 질러서 동네 느티나무 쪽으로 바로 올라 설 수 있는 양철 영감 논둑길을 택한 것이다.

꼴망태는 물을 잔뜩 먹어서 엄청 무거워졌고 송아지들도 벼락 치는 소리에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허둥거렸다

“오줌도 마렵고 운짐단다. 어서 뛰라, 이누마들아!” 기철이가 우물거리는 봉구와 뱀달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하늘 가마득히 내려오는 검은 구름 아래로 소낙비 줄기가 거므틱틱한 수염처럼 장대비를 수없이 내리 꼽았다.

바람은 점점 거칠어져 건너편 양철영감 밭둑에 선 미루나무 허리가 심하게 휘 굽어지면서 휘청거렸고, 밭머리 개망초꽃 무리들이 단숨에 뽑힐 듯이 꽃 대궁을 땅으로 처박았다.  

며칠 전 다들 마을 초입에 사는 갑순이 아부지에게 털을 따갑게 물고 늘어지는 바리깡 기계로 머리를 빡빡 깍은 터라서 아이들 까까머리 위로 후려치는 소낙비는 마치 콩이 떨어지는 듯 느낌 이상으로 따갑게 후두둑 거렸다.

양철영감 논둑은 다른 사람들 논둑에 비하여 좋은 논둑이지만, 이미 사정 없이 내리는 소낙비를 맞아 질퍽거리고 몹시도 미끄러웠다.

 

그때 허둥대면서 송아지를 잡고 뛰던 봉구가,

‘아이구, 내 소 꼴!“ 하면서 미끄덩 꿍! 하고 논둑에 넘어졌다.

순간 고무신이 하늘로 빙그르 한 바뀌 돌아서 내동댕이쳐 졌고 송아지는 겁에 질린듯 달아 나려고 애를 썼지만 봉구가 누운 채로  송아지 고삐를 부여잡고는,

‘워, 워, 도망치지 말라.. 니 도망가면 할배한데 내 혼띰 난-다-아“ 봉구는 거의 울상이다.

“야, 이 쪼데가, 퍼득 일나라.“ 뒤 따라 오던 기철이가 봉구 손을 잡아 이르키는데 이번엔 제일 앞머리에서 헉헉거리며 비속을 뛰던 칠구녀석이,

‘아이고, 내 발에 뱀이가 걸렸다!“ 왝하니 비명을 질렀다.

낮에 논에 개구리 잡아 먹으로 들어갔던 물뱀(일명 무재주)이 소낙비가 떨어지자 논둑으로 나와서 웅크리고 있었는데 천둥 바람소리로 칠구 발자국 소리를 못 듣고 있다가 칠구 고무신발에 걸려서 화들짝 놀란 뱀은 아래 논으로 쏜살같이 도망쳤지만, 그 언급한 상황에 너무 놀라서  칠구는 미처 도망치는 뱀은 보지를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지게를 벗어 던지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칠구가, ‘뱀이다!“ 고함치며 도망치자 그 좁은 논둑길에서 다들 더 전진을 못하고 웃질 거렸다.

결국 뱀달이가 논둑길을 확인한 후에 아이들은 움직였지만 당최 쏟아 퍼 붙는 소낙비에 앞이 캄캄하니 다들 겁을 잔뜩 먹었다.

 

소낙비는 더 세차게 꼴짐을 내리치고 그 너무 천둥소리도 더 심해지더니 바로 코 앞에 있는  마을 느티나무 윗쪽으로 섬광이 내리 꼽히더니,

“우르릉 짝!” 하는 엄청난 천둥소리가 터졌다.

“작년에 저 느티나무 벼락 맞았는데 또 맞는구나!”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다들 고막이 얼얼했다... 겁을 먹어 당최 앞으로 전진을 못했다.

그때다. 이번엔 봉구 송아지가 벼락 소리에 놀라서 뛰기 시작했다.

꼴짐이 가장 많았던 봉구넘이 다시 뒤뚱거리기 시작했다. 앞에서 송아지가 뛰니 봉구넘도 자연 질질 끌리면서 양철영감 논둑길을 건너가는데 앞이 당최 보이질 아니하고 검정 고무신이 미끄덩거리더니 결국  훌러당 벗겨졌다.

“아이고, 내 고무신!”

한마디로 여름철 천둥번개와 소낙비는 아이들에게 진퇴양난을 불러왔다.

 

진퇴양난은 이러했다. 소낙비는 치치요, 짜-재-짝 칼 소리를 내는 벼락도 치지요, 고막이 얼얼할 정도로 천둥소리도 나지요, 꼴짐은 비를 먹고 실실 넘어가지요, 송아지는 내리 뛰지요, 논둑은 물이 넘쳐 질퍽거리고 무너지지요, 고무신은 빗물에 미끄덩거리면서 벗겨질라하지요, 개구리도 뛰고, 물뱀도 논둑길에 나와 있다하지요, 비록 송아지라 하지만 아직 노가지 나무가지로 코 구멍을 뚫은 것이 아니라서 천둥소리에 놀란 송아지 힘은 어린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들지요, 삼베바지는 다 젖어 실실 궁디이 아래로 내려가지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낮에 더워서 살미 약수터에 엎드려 잔뜩 퍼마신 물배는 어느새 오줌으로 바뀌어 물먹은 불알 줄기가 땡땡해지도록 오줌보는 금새라도 터질 것  같지요, 앞은 당최 보이질 아니하고 논둑은 좁으니 지게를 세우고 쉴 수도 없고 숨을 곳도 없지요, 만약 이 난리 통에 송아지마저  도망치는 날이면 엄청난 이 소낙비를 헤치고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까 더럭 겁도 나지요.

 

우르르 과-광 쾅!“

다시 한번 엄청남 천둥이 아이들 머리 위로 터졌다.

급기야 쪼대기 봉구란 넘이 제일 먼저

“아이구, 할배요!” 하면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봉구만 우는 것이 아니고 비를 흠뻑 맞으면서 논둑 한 가운데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다들 울상이 되었다. 그런 꼬마들 대갈통 위로 또 귀 고막이 얼얼할 정도로 천둥소리가 터지고 콩알보다 더 큰 소낙비가 하늘에 큰 구멍을 뚫어놓고 세차게 내리 퍼붓기 시작했다.

 

(조정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