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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남편을 위한 아내의 사랑

 

한국의 멋나는 그날 주도향(周道香) 선생의 집도로 각막 이식수술을 받고 있었다. 마취가 된 눈언저리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으나 의식만은 또렷해서 금속제 수술도구가 부딪는 소리라든가, 주 선생의 나지막한 말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가 있었다.

 

오른쪽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은 3년전의 일이었다. 처음엔 가벼운 염증이려니 여기고 대단치않게 생각했으나 퉁퉁 부어오른 눈의 부기가 여간해서 내릴 줄을 몰랐다. 결국 타이페이의 3군 총의원(總醫院)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미 그 쪽 눈의 시력을 잃고 난 뒤였다. 진찰 결과 각막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절망적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전에 이미 나의 왼쪽 눈은 지독한 원시(遠視)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수 수건 같은 것에서 옮았을 겁니다. 아니면 풀장에서였든가." 주 선생의 말이었다. 나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수영 교사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나는 각막 이식수술을 받으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놀라운 말을 들었다. 아내에게 그 말을 했더니 그녀는 얼굴이 환히 밝아지면서 아무 말 없이 예금 통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대만불(臺灣弗) 2만 달러 가량 들어 있는 통장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가내부업으로 아내가 남몰래 모아온 피와 땀의 결실이었다.
"모자라면 또 어떻게 마련해 보겠어요." 아내는 짐짓 웃어 보였는데 그것은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신은 저 같은 것하고는 다른 사람이니까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눈뜬 장님이니까요. 당신은 눈을 되찾아야 해요."

 

주 선생은 대만에서 각막 이식수술의 개척가요 권위자였다. 내 이름은 즉시 수술희망자 명부에 올랐다. 그러고 채 한 달이 못되어 주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교통사고로 죽은 운전수가 있는데 죽기 전에 자기 몸의 여러 부분을 팔아서 쓰라고 아내에게 유언을 했답니다. 아이가 여섯이나 된다니까 그 살림 사정이야 알 만하잖겠어요. 그 쪽에서는 각막을 양도하는 대신 1만 달러를 달랍니다. 어떻습니까? 수술을 하시겠습니까?"
수술비용과 입원비를 합쳐 대략 8천 달러 이상은 되지 않겠지 싶어 나는 그 각막을 양도 받기로 결심하고 그 이튿날로 입원을 했다. 나는 매우 행운아인 셈이었다. 각막을 얻기 위해 몇 해씩 기다렸다는 수술 희망자들의 이야기를 나는 여러 사람에게서 들어왔던 것이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 회복실로 들려져 갈 때 딸애인 소용(小傭)이가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모든게 순조로웠어요, 아빠. 엄마는 오고 싶지만 왠지 두려워 못 오겠다고 했어요."
"괜찮다고 하더라고 전해라. 아무 염려 말라구."

 

나는 19세 때 부모의 권유에 따라 결혼을 했다. 나의 부친과 장인은 오랜 친구 사이로 만일 두 사람이 각각 아들과 딸을 두게 되면 결혼을 시키자고 총각시절에 이미 약속을 해두었었다는 것이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바로 결혼 당일이었다. 가마를 타고 온 아내가 신방에 들어온 뒤 머리에 쓰고 있던 금란직(金 織) 보를 벗었을 때 나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굴이 온통 우박 맞은 잿더미 모양의 곰보인 데다 주먹만한 들창코 - 그 허공으로 뻥 뚫린 두 구멍이 추악하게 벌름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썹은 숫제 이름뿐이었고 눈꺼풀에 난 징그러운 흉터는 두 눈을 퉁퉁 부어오른 것처럼 보이게 했다. 나와 동갑내기라는데도 40여세는 족히 넘어보이는 기가 막힌 박색이었다. 나는 얼른 어머니 방으로 도망쳐 나와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울먹였다. 어머니는 운명이려니 하고 체념하라고 나를 타일렀다. 얼굴이 반반하면 틀림없이 얼굴값을 하게 마련이므로 결국 불행을 불러들이는 법이며, 오히려 복은 박색한데 붙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뭐라 하든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그날 밤을 새웠다. 그 후로 나는 다시는 아내의 방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고 물론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도망치듯 학교 기숙사로 갔고, 여름방학에도 집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아버지의 당부를 받고 사촌형이 나를 데리러 왔다. 내가 사촌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마침 저녁상을 차리는 중이었다. 아내는 나를 보자 사뭇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나는 질겁을 해서 외면을 해버렸다. 저녁이 끝나자 어머니가 나를 넌지시 불러냈다.
"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네가 너무 심한 것 같다. 저 애는 얼굴은 비록 박색이라고는 해도 겪어보니 그렇게 마음이 어질고 착할 수가 없더라."
"
그야 어련할라구요." 나는 끓어오르는 부아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흘려보며 볼멘소리를 질렀다.
"
마음마저 흉측하다면 어찌 부모님께서 저런 계집을 내게 떠 안겨 주셨을라구요. 저렇게 가년스럽게 능청을 떠는 천상의 여자를 말입니다."
어머니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
얘야, 저 애는 참으로 심지가 깊고 식구 누구에게든 헌식적인 여자란 말이다. 네게 소박을 당하고도 조금도 쉴틈없이 부지런히 일을 찾아 하고 또 깔끔하기가 이를 데 없단다. 네 태도가 그렇게 쌀쌀맞아도 원망은커녕 눈살 한번 찌푸린 적이 없다. 눈물을 보인 적도 없구. 그렇지만 그 심정이 어떻겠니. 넌 생각해 본 일이 없을거다만 저 애 역시 여자라는 점에서 누구와도 다를 바 없잖겠니. 한세상 살다 가는 걸, 남편 시중 잘 듣고 순종하며 자식들 훌륭히 키워준다면 여자로선 더 바랄게 없는거야. 너는 저 애가 가엾지도 않니? 생으로 젊은 나이를 과부로 보내다니."

 

그 후 나는 눈 질끈 감고 아내와 한방에 들기는 했으나 얼어붙은 마음은 여전히 녹을 줄 몰랐다. 아내는 언제나 내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어쩌다가 한두 마디 말을 할 때도 모기소리 같은 음성이었다. 내가 짜증을 부리면 잠깐 고개를 들어 배시시 웃고 나서 얼른 고개를 숙여버리곤 했다. 아내는 어려운 살림의 여가를 틈타 밀짚모자를 만들고 돗자리를 짜며 그물을 손질하고 도기(陶器)에 그림을 그려넣는 등 잠시도 쉬지 않고 억척스레 일거리를 맡아했다. 그것은 정말 뼈가 부스러지는 노력이었다. 애들도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는 단 한번도 관사에서 살아본 일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상사나 동료들에게 아내의 몰골을 보이기 싫어한 까닭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딸애 소용이는 대학을 나와 교원생활을 시작했고, 아들녀석은 육사에 재학중으로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터다.

 

수술 후 두 주일이 지나 실을 뽑게 되었다. 그 두 주일은 불안 속의 나날이었다.
"완쾌한다면 각막을 준 분의 무덤을 찾아가야겠다." 나는 딸애에게 말했다.
이윽고 눈에 감긴 붕대가 풀려졌다. 나는 눈을 뜨기가 몹시 겁났다.
"빛이 보입니까? " 하고 주치의가 물었다. 나는 눈을 껌벅이며 대답했다.
"! 위쪽으로요."
"전등빛 입니다." 주 선생은 내 어깨를 툭 치고 힘주어 말했다.
"성공입니다. 1주일 후엔 퇴원해도 좋소! "
그로부터 1주일,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력 검사를 받았다. 처음엔 시야가 그저 희끄무레하기만 하더니 마침내 주치의가 내밀어보이는 손가락도 알아볼 수 있게끔 되었다.

 

퇴원하는 날엔 창문이며 침대,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까지도 모두 또렷하게 보였다.
"엄마가 아빠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리세요." 퇴원하는 날 소용이가 병원으로 나를 데리러 와 이렇게 말했다.
", 고맙구나."
우리는 택시로 집에 돌아왔다. 택시 안에서 소용이는 웬일인지 그 애답지 않게 새침하니 말이 없었다.
아내는 부엌에서 요리를 내오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서자 무슨 까닭인지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예의 그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 오십니까? "
"고마워, 고생 많이 시켰어."
나는 식탁 앞으로 가 앉았다. 아내는 상을 다 보고 나더니 벽쪽으로 돌아앉아 훌쩍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조금 전 하신 그 말씀..... 그 말씀만으로 저는 기뻐요. 제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내는 울먹이며 떠듬떠듬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소용이가 심상치 않은 기세로 방에 뛰어 들어왔다. 그 애의 얼굴도 제 엄마처럼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엄마! " 딸애는 아내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격렬하게 부르짖었다.
"아빠에게 모두 털어놔요! 엄마가 아빠에게 눈을 뽑아 드렸다구! 자아, 얼른 보여드리란 말이에요. 이렇게...."
"얘야, 너무 목소리가 높구나. 엄마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란다." 아내는 여전히 벽쪽으로 돌아앉은 채 말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아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어깨를 잡아 얼굴을 돌리게 했다. 아내의 왼쪽 눈의 홍채(虹彩)는 수술 전의 내 눈처럼 흐려 있었다.
"금화! " 내가 아내의 이름을 부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 왜 이런 짓을 했소! " 나는 아내의 어깨를 쥐어흔들며 소리쳤다.
"당신은... 당신은 소중한 제 남편인걸요."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녀를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격정이 화닥화닥 불꽃을 튀기며 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더 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털썩 마룻바닥에 무너져내리듯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아내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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