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자전거

 

끼이익! 숨이 넘어갈 듯한 쇳소리를 내며 나는 급하게 멈춰 섰습니다.  덕배 아저씨가 ‘싱싱과일가게’ 앞에서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지요.
“어어이!
 아 아자씨, 자알 이 있었어?  아 아자씨, 오늘 사 사콰랑 규 귤리랑 많이 팔어요.”
그랬군요.
 덕배 아저씨는 사과 상자를 밖으로 내어 놓고 있던 과일가게 아저씨에게 아는 체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어이구 고마워라.
 우리 가게 걱정은 늘 덕배 씨가 해준다니까.  난 저래서 우리 덕배 씨가 최고라니까”
덕배 아저씨는 누런 이를 내보이며 연신 싱글벙글 입니다.
 과일가게 아저씨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거죠.  

그런데 이번엔, 교문 밖으로 막 쏟아져 나오고 있는 초록 초등학교 아이들이 덕배 아저씨 눈에 들어온 모양 입니다.
“어이!
 야 야들아!  오늘 고 공부는 잘 혔냐?”
덕배 아저씨가 아는 체를 합니다.
 그러자 꼬맹이들 서너 명이 심심한데 잘됐다는 듯 쫓아옵니다.  신발 주머니를 훼훼 돌리며,  “떡배야, 떡배야!” 하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말 입니다.  덕배 아저씨는 땅에 내려놓았던 두 발을 올려 다급하게 페달을 구릅니다.  그런 덕배 아저씨의 얼굴에는 ‘용용 죽겠지! 요 녀석들아!’ 하는 표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떡배야,
 떡배야!  쫌만 천천히 가라야.  떡배야!  쫌만 천천히 가라니까.”
버릇없는 꼬맹이들 같으니라구.
 아저씨 나이가 몇인데,  이름을 마구 불러대고 반 말투로 지껄이는지….  나는 꼬맹이들이 너무도 못 마땅합니다.  하지만, 덕배 아저씨는 페달을 더욱 세게 구릅니다.  나도 있는 힘을 다해서 최고 속도를 냅니다.  그건 몸과 마음이 성하지 않은 덕배 아저씨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입니다.  가자면 가자는 대로, 빨리 달리자면 빨리 달리자는 대로, 서자면 서자는 대로 아저씨의 마음을 잽싸게 눈치채고 따라주는 일 말 입니다.  우린 이제 어느새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어버렸거든요. 덕배 아저씬 자기를 태우고 어디라도 달려가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자전거인 줄 알고 있지요.  나 또한 그런 덕배 아저씨가 이 세상에서 제일로 든든하답니다.
덕배 아저씨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초록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덕배 아저씨가 바보인 줄 알지요.  하지만 붙임성이 좋은 덕배 아저씨를 어느 누구도 싫어하진 않아요.  덕배 아저씨는 ‘정신지체’라는 병이 있나 봐요.  몸도 조금은 아프지만 말도 어눌하고, 나이 서른이 넘었어도 생각하는 건 아이들 수준이래요.  하지만 덕배 아저씨가 잘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어요.  그건 나를 타고 씽씽 달리며 동네방네 마실 다니고 여기저기 참견하는 일 이지요.
어느새 골목길을 요리조리 달려 꼬맹이들을 따돌린 우리는 ‘웃음 복덕방’ 앞에 다다랐어요.
 덕배 아저씨는 복덕방 앞에 나를 세워놓고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갑니다.  덕배 아저씨가 복덕방에 들어간 사이 나는 기분이 조금은 나빠집니다.  아저씨가 어리벙벙한 말투로 있는 수다, 없는 수다, 다 떨다 나올 때까지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이렇게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하니까요.  오늘처럼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른 날, 동네에만 콕 처박혀 있어야 하다니….  누구라도 몸이 쑤시지 않겠어요?  하지만 얼마 전 일을 생각하면 이렇게 초록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동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난 감지덕지 해야 합니다.
열흘 전쯤인가, 그 날도 난 덕배 아저씨와의 하루일과를 마치고 저녁 무렵 대문가에 서 있었죠. 그런데 난데없이 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겠어요?
“우리 덕배, 암만 해도 자전거를 하나 새로 사 줘야겄수.
 자전거랍시구 저 꼴 같지 않은 거 타고 동네방네 마실 댕기는데 저게 벌써 십 년도 넘었잖우?”
외출길에서 돌아오신 덕배 아저씨의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어요.
“그게 그리 오래 됐나?
 허나 자전거가 잘 굴러댕기기만 하면 되지.  아직 고장은 안 났잖아.”
덕배 아저씨의 아버지 말씀이 없었다면 난 그 자리에서 ‘꽈당’ 하고 기절을 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덕배 아저씨 어머니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건 그래두 난 우리 덕배에게 새 자전거 하나 사줄라카요.
 우리 덕배 뭐 하나라도 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쓴다니까.  정은 많고 욕심이 없어서 그렇지, 그깐 새 자전거 비싸면 얼마나 비싸겄수?  저 자전거 팔아치우고 어여 새 자전거 하나 사 주입시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내 가슴 속에선 뭔가가 쿵 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어요.
 덕배 아저씨랑 정든 세월이 십 년인데 이제 그만 없어지라구?  내가 뭐 굴러가지를 않나, 속도가 느리길 하나, 사고를 한 번 내봤나….  무엇보다도 덕배 아저씨를 떠나서는 나는 절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고물상에 가서 몸이 갈갈이 찢긴 채 녹슨 고철 덩어리로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하는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지요.
십 년 전, 내가 처음 이 초록 마을에 왔을 때만 해도 덕배 아저씨는 멋진 총각이었지요.
 앞니 하나가 검게 멍들어 있고 한쪽 어깨가 약간 기울어진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요.  나도 갓 태어나 이 세상에 처음 선보였을 때이니 얼마나 예쁘고 멋졌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저씨 나이가 서른이 넘은데다 병도 깊어져, 얼굴도 검어지고 몸도 야위었지요. 나 역시 아직 잘 굴러가기는 하지만 벨 소리도 안 나고 여기저기 페인트 칠도 벗겨지고, 요즘 새 자전거들이 죄다 기지고 있는 기어 변속기능도 없답니다.
“이히야, 히히히. 이게 내 내 꺼라?
 이게 즈 증말로 내 자 자전거란 마 말이지?”
내가 처음 덕배 아저씨네 집에 오던 날, 아저씨는 나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앞바퀴도 만져보고 안장도 쓰다듬으며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나도 그런 아저씨가 왠지 마음에 들었고요. 한 열흘 정도는 덕배 아저씨가 자전거 타는 법을 몰라서 나를 좀 고생시키기도 했지요.  그 덕에 아저씨는 물론 내 몸도 여기저기 멍이 들곤 했지만요.  하지만 아저씨는 얼마 안가 나를 아주 잘 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를 무척 좋아했지요.  우리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바람 부는 날도, 하늘 맑은 날도, 언제나 같이 동네방네를 쏘다녔어요.  비가 올 때랑, 눈이 올 때, 태풍이 불 때, 몹시 추운 겨울 길이 꽁꽁 얼어붙어 있을 때만 빼놓곤 말이죠. 우리는 친구였어요. 그런데 나는 그렇게 정든 덕배 아저씨를 떠나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던 거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덕배 아저씨도 내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나봐요.  덕배 아저씨가 시장을 보고 돌아오시던 어머니를 불러 세우곤 근심 어린 모습으로 이렇게 물었어요.
“어 엄마야, 내 자 자전거가 왜 이렇나?
 요오새 여엉 히 힘도 없구 소 속도도 짱 느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몇 날 며칠을 잠을 못자 힘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바퀴에 공기도 쑥쑥 빠지고, 브레이크도 잘 안 듣고, 고갯길 같은 델 올라갈 땐 헉헉거리고…  내가 생각해도 예전의 내가 아니었지요.
“아이고, 우리 덕배.
 그래서 내가 수일 내로 니 새 자전거 사줄라 안카나.  걱정 말그라. 저 자전거는 고물상에나 갖다주고 수일 내로 아부지랑 ‘씽씽자전거포’에 가설랑 멋진 걸로 하나 골라보그라.”
덕배 아저씨 어머니는 마침 잘됐다는 듯 말씀 하셨지요.
 나는 온몸이 개미보다 더 작게 오그라드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이내 덕배 아저씨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보통 때보다 말을 더 더듬거리며 이렇게 외치는 거였어요.
“어 엄마야!
 지금 니 뭐, 뭐라 캤나.  내 자 자전거 새 새로 바 바꾼다고?  어 엄마야, 난 저 자전거가 좋다.  나 난 새 자 자전거 필요 없다아….”
난 고개를 번쩍 들어 그런 말을 하는 덕배 아저씨를 쳐다보았어요.
 아저씨는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했어요.  내가 덕배 아저씨를 소중히 생각하는 것처럼 아저씨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그때 내 가슴속 빈 구석에 무언가 아름답고 따뜻하고 고운 어떤 것이 빵빵하게 채워지는 것 같았어요.  그 느낌은 내 슬픔과 두려움을 곧바로 눌러버리고야 말았어요.  그리고 덕배 아저씨의 깊은 마음을 안 이상, 당장 버려진대도 하나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어요.
“나 난 쌔 자 자전거래두 시 싫다.
 난 저 자 자전거 타 탈거라.  씨이이, 나한테서 저 자 자전거 뺏어가면 나 난 죽어버릴란다!”
덕배 아저씨가 계속해서 소리쳤어요.
 깜짝 놀란 덕배 아저씨 어머니가 이렇게 달래셨어요.
“아이구, 알았다. 알았어.
 그래 니 소원대로 새 자전거 안 살 테니 그만 울그라.”
그렇게 해서 몇날 며칠 동안 날 공포로 몰아넣었던 새 자전거 사건은 끝이 나 버렸지요.
 그리고 나는 다시 온 몸에 힘이 쑥쑥 솟아났고요.
어, 웃음 복덕방 유리문이 삐그덕 하고 열리더니 덕배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고 있네요.
 복덕방 할아버지랑 수다를 떨 만큼 떨었나봐요.
“자 자아, 그럼 이번에는 어 어디로 가 갈까?
 다 달고나 뽑기 아자씨한테로 가 가볼까?  지아, 추 출발이다아!”
덕배 아저씨의 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나는 신나게 골목길을 달려 갑니다.
 언제 어디서 멈출지는 몰라도, 이렇게 덕배 아저씨와 나의 신나는 여행은 계속될 겁니다.

신 현수 : 1961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4년 동안 교육신문, 국민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하고,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인 두 아들을 키우며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월간 샘터 2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