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과 알사탕 두 개

 

전라북도 옥구군 미면(지금 전북 군산시 미면) 문창초등학교 3학년 시절, 우리 집은 가난했습니다.

농사 짓던 우리 집은 해안가의 소금기가 덜 빠진 논을 속아서 구입하는 바람에 내리 3년 농사를 망쳤습니다. 급기야 살아갈 방도로 마련한 것이 시골 동네에 주막집을 겸한 구멍가게였는데, 농사꾼이 장사의 이치를 알 리가 없어서 매달 손해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형과 나는 보리밥 도시락조차 장만하지 못하여 책보자기만 달랑 허리에 동여맨 채 빈손으로 학교에 갔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나는 운동장 끝에 있는 수동 펌프물을 퍼 올려 찬물로 배를 채우고 우두커니 나무 밑에 앉아 힘차게 뛰노는 동무들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참 부러웠습니다. 점심 먹는 애들이-.

그러던 5월 어느날, 담임을 맡고 계시던 김 기영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도시락을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아래 1학년 교실에는 아이들이 없으니까 가서 먹고 오너라. 빈 도시락일랑 나중에 선생님 책상에 갖다 놓거라."

선생님이 드실 도시락이었습니다.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며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자, 얼른 받아라. 선생님 손 빠지겠다."

선생님의 재촉에 나는 도시락을 받아들고 빈 교실로 내려갔습니다.

도시락 안에는 보리가 조금 섞인 쌀밥과 내가 처음 먹어보는 계란말이, 멸치조림 그리고 알맞게 익은 김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소중한 보물을 집어 올리듯이 밥을 떠 입안에 넣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던 뒤라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는 순간 목이 메이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하시며 사기잔에 담긴 물 한 잔과 알사탕 두개를 놓고 나가셨습니다.

그 뒤로 나는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릅니다. 단꿀 같은 밥알이 목에 넘어갈 때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밥을 다 먹고 물을 마신 뒤 나는 오색이 영롱한 큰 알사탕을 하나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개는 호주머니 깊숙이 숨겼습니다.

오후 두시간 수업 내내 나는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나에게 도시락을 주셨기 때문에 점심을 못 드셨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어머니는 돌아앉으셔서 한숨을 섞어 눈물을 글썽이시다가 말씀 하셨습니다.

"참, 고마운 선생님이시다. 영원히 잊지 말거라."

다음날부터 선생님께서는 매일 두 개의 도시락을 싸오셔서 하나는 내게 주셨습니다.

그러기를 석 달 가까이 하고 나서 나는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만큼 한가하지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논과 밭으로 일 나가시면 네 동생 돌보기는 모두 내 책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월사금(그 때는 초등학교도 학비를 냈음)과 학습도구 구입, 책가방은 물론 도시락을 쌀 점심이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휴학하였습니다.

나에게 참 스승의 길을 몸으로 가르쳐주신 김 기영 선생님, 지금 살아 계신다면 여든이 넘으셨을 텐데, 보고 싶어 여러 번 찾았지만 뵐 길이 없습니다.

이제 내가 선생님의 뒤를 이어 나보다 어려운 이웃과 학생들을 돕겠습니다. 선생님의 제자사랑의 큰 뜻이 더 크게 널리 퍼질 수 있도록 열심히 후손을 가르치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