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함을 얻다

 

나 같은 사람은 교회에 다닐 처지가 못 된다. 나 같은 사람은 교회 체질이 아니다. 교회라는 데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다니는 곳이다. 교회에 안 다녀도 얼마든지 인덕을 쌓으며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좀 많으냐? 교회에 다닐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건강 취미 생활을 하겠다. 종교는 의지력이 약한 사람들이나 매달리는 허구의 안식처다.

1990년 봄, 윤형주 장로님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기 전까지의 제 생각이 그랬습니다. 교회가(종교가) 저 같은 사람하고 인연이 없다고 여기게 된 요인 중의 하나는 종교=속박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고정관념으로 자리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데, 사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소위 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분방한 성격의 소유자 입니다.

어떤 거창한 이데올로기도, 어떤 막강한 집단 파시즘의 위력도, 어떤 도덕규범의 사슬도, 저는 심정적으로 거기에 예속 되기를 거부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를테면 세상의 상식에 대한 태생적인 반골(反骨)인 셈입니다.

소시적에 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의식이 대개 그렇듯이 제 경우 역시 자유는 그 어떤 사상이나 사고 가치보다 상위 개념으로 인식 되었습니다. 자유는 때로 자연스러움이라는 뜻으로도 확대 해석되곤 하였는데, 이는 모든 인위적인 규범, 규칙, 규율, 형식 따위의 필요악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교회당이라는 델 찾아가서 까닭 없이 굽신거리며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것이 영 체질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단 교회의 울타리에 들어갔다 하면 그 순간부터 제가 누리던 일상의 자유는 고스란히 그곳에 영치(領置) 당하고 말 것 같다는 불안감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문학적 또는 예술적 논리로만 따지자면 경우에 따라 지금도 그런 생각은 썩 타당하게 인정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현실적인 삶이 문학이나 예술 같은 극단적 창의(創意) 퍼포먼스 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입니다. 가까운 샘플이 바로 지금 이 글을 쓰는 골칫덩어리 인간 입니다.

앞서의 이론대로라면 믿음 없이 살던 1990년도 이전의 제 삶이 훨씬 자유스럽고 행복했어야 옳을 것입니다. 과연 그 때 나는 행복 했던가? 남들이 보기에는 제법 빛깔이 괜찮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내면에 그렇지 못했습니다. 앞에도 썼듯이 밤이면 밤마다 불면에 시달렸고, 해만 지면 까닭 없이 불안했습니다.

접촉 가능한 자유 명색의 행태들을 더러 추구해보기도 했지만 진정한 자유함의 평화는 내면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습니다. 인간사의 모든 욕망을, 욕구를, 질시를, 탐욕을, 걱정을 다 짊어지고 살면서 머리 속으로만 자유함을 추구하고자 했으니 우선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걱정거리의 짐을, 온갖 욕망의 짐을 잔등에 무겁게 지고 길을 걷는 사람이 어떻게 자유스런 몸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하는 얘기 입니다.

결론은 간단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라보며 사는 지금의 제 삶이 이전의 삶보다 훨씬 자유스럽습니다. 마음 속의 짐을 다 내려놓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지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구원의 보혈 한 줌을 남기시고 죽으신 분 입니다. 죽음으로 자신의 존재와 뜻을 말 없이 남기신 분 입니다.

그 앞에 모든 짐을 다 내려놓으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 하십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마음을 비운다는 뜻 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심신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 집니다. 욕망이 있던 자리에 감사가, 질시가 있던 자리에 축복이, 교만이 있던 자리에 회개가 대신 들어 앉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유함을 얻는 일임을 고백 합니다. 그 자유함은 영원함, 불변함과 동의어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영원함이란 오직 진리의 길 안에서만 가능한 축복임도 함께 깨닫습니다.

지난 날 세상에서 추구하던 자유주위가 나중에 알고 본즉 사실은 실존 미명의 허무주의와 그 뿌리가 다르지 않았음을 이제 고백 합니다. 진정한 자유, 그것은 건강한 도덕적 울타리 안에서만 비로소 힘을 받는다는 사실도 아울러 고백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양심의 추를 매달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 입니다.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은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도덕의 울타리요, 유일한 항로의 나침반이기 때문 입니다.

                                                                                            이 만재 /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