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이야기

 

쿠웨이트 정유공장의 역사, 현재 그리고 미래

 

18세기의 쿠웨이트는 버려진 귀양지로 진주채취와 무역이 주업이었다. 쿠웨이트 목동들은 황량한 사막에 시꺼먼 무언가를 자주 목격한다. 바레인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그 시꺼먼 무언가가 돈이 된다고 하여 1932년부터 채굴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아 쿠웨이트는 1934년에 영국의 Anglo-Persian Oil Company(지금의 BP)와 미국의 Gulf Oil(지금의 Chevron)이 합작하여 쿠웨이트 석유회사(KOC)를 설립하였다. 드디어 1938년 2월22일 쿠웨이트에서는 최초로 다량의 원유가 발견되었으며, 쿠웨이트가 석유 위에 뜬 국가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제 쿠웨이트에는 세계 확인 매장량의 10%에 해당되는 965억 배럴의 원유가 사막 속에 있다.

1949년에 영국과 미국의 석유회사로 구성된 KOC는 미나 알 아흐메디(Mina Al-Ahmadi) 정유공장을 완공하였으며, 정유공장의 운영을 책임 질 쿠웨이트 정유회사(KNPC)는 1960년에 설립되었다. 1968년에 KNPC에 의해서 슈와이바(Shuaiba) 정유공장이 완공되었으며, 1977년 KNPC는 1958년에 건설된 미나 압둘라(Mina Abdulla) 정유공장의 지분을 AMINOIL(American Independent Oil Company)로부터 사들였다. 1979년이 되어서야 석유/가스의 탐사 및 생산, 석유정제, 수송 및 석유화학생산 분야의 4개 회사가 완전히 정부의 장악 하에 들어갔으며, 이를 관리하기 위한 상부기관인 국영 KPC(Kuwait Petroleum Corp.)가 1980년에 발족되었다.

초기 KOC의 대주주인 미국 Gulf Oil은 대한석유공사의 대주주로 1964년에 울산 정유공장을 완공하면서 쿠웨이트산 원유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한국 최초의 SK 울산 정유공장 중 일부 상압증류공정은 쿠웨이트산 원유로 설계가 되었으며, 지금도 SK는 쿠웨이트에서 하루 17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미나 알 아흐마디(Mina Al-Ahmadi) 정유공장

1949년 쿠웨이트에서 최초로 건설된 미나 알 아흐마디(Mina Al-Ahmadi) 정유공장은 일산 25,000배럴의 단순한 공정으로 시작하였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대적인 확장사업을 전개하였다. 일본 엔지니어링 업체인 JGC에 의해서 1984년과 1986년에 각각 정유공장 현대화 및 확장사업이 완료되면서 생산규모는 일일 416,000배럴로 증가하였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시 가장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며, 1994년 미국의 포스터 휠러(Foster Wheeler)가 3개 정유공장의 복구사업을 완료하면서 정상적인 생산규모를 유지하게 되었다.

1994년 11월 일본의 미쯔이 엔지니어링이 MAF(MTBE/Alkylation/FCC Revamp) 프로젝트를 1억불에 수주하였으나, 수행 중 대대적인 손해를 보면서 일본 엔지니어링 업체의 대부분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그 이후 1억불 이상의 대규모 공사는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한국업체가 맡아서 수행하게 된다. 1996년 9월 가스처리시설 프로젝트를 SK건설이 1.6억불에 수주하여 1999년 3월에 완공하였으며, 이어서 2000년 4월 LG건설(현 GS건설)은 가스오일 탈황설비 프로젝트를 1억불에 수주하여 2001년1월에 성공리에 완성시켰다. 2000년 9월 현대건설은 석유부두공사를3.2억불에 수주하여 지난 2005년2월 수상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성대한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2000년 6월25일에 일어난 대규모 화재사고로 접촉개질(Reformer) 공정이 전소되었으며 3번째 상압증류공정도 큰 피해를 보았다. SK건설과 미국의 플로어 컨소시엄이 2001년 2월에 수의계약으로 3.4억불에 수주하여 2004년2월에 완공하였다. 아울러 석유화학공장에 공급할 원료를 생산하는 에탄 회수처리시설 프로젝트는 2005년 4월 현대건설이 4억불에 수주하여 본격적인 수행을 앞두고 있다.

*미나 압둘라(Mina Abdulla) 정유공장

미나 압둘라(Mina Abdulla) 정유공장은 1958년에 미국의 AMINOIL에 의해서 건설되었으며, 하루 30,000배럴을 생산하는 아주 단순한 공정이었다. 수 차례 확장 공사를 통하여 그 생산규모는 1975년에 하루 145,000 배럴로 증가되었다. 1978년에 쿠웨이트 정부가 정유공장을 완전히 인수하면서 대대적인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1989년에 미나 압둘라 정유공장은 현대화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일일 생산규모는 240,000배럴로 증가되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하면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미국의 포스터 휠러가 1994년 복구사업을 완료하면서 정상적인 생산규모를 유지하게 되었다. 2002년 11월 LG건설이 잔사유 탈황설비 프로젝트를 1.4억불에 수주하여 2004년9월에 공기를 13일 앞당겨 준공하였다.

*슈와이바(Shuaiba) 정유공장

1966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968년 4월에 완공된 슈와이바(Shuaiba) 정유공장은 그 당시에는 세계 최초로 모든 공정이 수소를 사용하는 프로세스로 설계되었으며, 생산규모는 하루 95,000 배럴로 수출형 정유공장으로 지어졌다. 1975년에 정유공장 확장사업에 따라 일일 생산규모는 195,000배럴로 증대되었다.

슈와이바(Shuaiba) 정유공장은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3개 정유공장 중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보았으며, 3년간 공장이 가동되지 못하였다. 1993년 10월에 미국의 포스터 휠러 및 대림산업에 의해 보수작업이 완료되어 일일 150,000 배럴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1997년 초에야 최대생산 규모인 하루 200,000 배럴로 가동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정유공장은 약 5년 후면 운명을 다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최신의 대규모 신규 정유공장이 지어지면서 폐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현재 쿠웨이트에서는 3개의 정유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정유제품의 총생산규모는 일일 915,000배럴이 되었다. 각 정유공장은 내수와 수출의 변화에 신속하며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또 하나의 거대한 공장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함락된 후, 쿠웨이트는 이제 거침없이 세계 최대규모의 하나로 기록될 신규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대담하게 추진하고 있다. 2004년 11월 미국의 플로어가 기본설계 업무를 수주하면서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구체화되어 가고 있다. 여러 차례의 연구검토를 거쳐 그 생산규모는 일일 600,000배럴로 최근에 확정되었으며, 총 투자비는 40억불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일산 225,000 배럴은 발전소용 연료로 사용되며, 나머지 375,000 배럴은 수출용으로 설계된다.

신규 정유공장의 기본설계가 2006년 2월에 끝나면, 곧 바로 EPC에 대한 입찰이 실시되며, 프로젝트의 규모가 광대함에 따라 3개에서 6개의 계약 패키지로 나누어 발주될 예정이다. 2,500 MW의 북부 아주르 발전소에 무공해 연료를 제공하기 위하여 10여개의 탈황설비 공정이 대거 들어서며, 잔사유 탈황설비공정은 이미 쉐브론(Chevron) 프로세스로 결정되었다.

상기의 신규 정유공장과 더불어 기존의 미나 알 아흐마디와 미나 압둘라 정유공장도 약 30억불이상이 투자되어 대대적인 현대화 작업이 병행된다.

총 7개에서 10개로 나누어 발주될 세계 최대규모의 정유공장 신설 및 현대화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하여 세계 유수의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벌써부터 관심을 갖고 있다. 쿠웨이트 정유공장 프로젝트를 이미 수행한 바 있는 한국의 SK건설, GS건설, 현대건설 및 대림산업은 프랑스, 이태리, 미국, 스페인 및 일본 엔지니어링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금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쿠웨이트가 2010년에 신규 정유공장을 완공하면, 쿠웨이트의 정유 생산량은 일산 150만 배럴이 되어 중동에서는 사우디 아라비아 다음의 정유생산 대국으로 변모하게 된다.


(조성환의 쿠웨이트 이야기) (2005.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