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이야기

 

쿠웨이트의 전통 혼수품 시장 - 수크 무바라키

 

쿠웨이트는 일찍부터 걸프해를 무대로 하던 해상 실크로드 교역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그래서 ‘쿠웨이트’란 바로 ‘작은 성채’라는 뜻을 갖는다. 강대국들이 그런 곳을 가만둘 리 없었다. 오스만 제국이 19세기 말까지 그 곳을 점령했고, 1961년 독립할 때까지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들은 원래 천부적인 진주 채집집단이었다. 걸프해가 오랫동안 진주와 산호산지로 유명하게 된 것도 그들의 공헌이었다. 그리고는 해상의 요지에서 주로 인도양으로 통하는 교역으로 국제적인 상인으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진주와 산호, 노예무역으로 번성하던 쿠웨이트가 새로운 변신을 강요받게 된 것은 1930년대 이후 석유가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자그마한 어촌에 초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배 대신 자동차를 타게 되는 생활의 급격한 변화가 따랐다. 더 이상 걸프해의 맑은 물에서 자맥질하며 진주를 캐지 않아도 되었다.

석유가 가져다 주는 풍요와 사치는 이제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명예와 멍에를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자신들이 주름잡던 진주산업은 최고급 진주를 수입하는 생활로 바뀌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수 천년간 내려온 상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옛날과 똑같은 방식의 시장만은 버리지 않았다. 그 전통시장이
수크 무바라키이다.

수크 무바라키는 도심 한가운데 초현대식 건물의 뒷골목에서 과거의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거대한 재래식 원단 시장이다. 드물게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시장이기도 하다. 세계 각지에서 고유한 디자인과 색상으로 직조된 다양한 원단이 네온의 불빛에 휘황찬란하게 고객을 손짓한다. 한국산 폴리에스터는 물론, 캐시미르산 양모, 이집트산 면제품, 중국산 실크가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옷감이 주류를 이루지만, 혼수에 필요한 귀금속과 화장품, 오랜 시간의 눈요기 쇼핑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간이 카페도 있다. 카페에는 커피 대신 색색의 생과일 주스가 인기다. 병 속에 색 모래를 넣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모양을 내듯이, 길다란 잔에 색색의 음료를 담았다.

노란 오렌지와 빨간 체리, 녹색의 키위, 주황색 망고 주스가 층층이 섞이지 않고 미각을 자극한다. 하얀 형광 불빛에 밤의 무지개 주스가 된다. 시장 골목을 누비는 인파는 대부분 여자들이다. 걸프전 이후 여성개방의 물결이 이 곳 시장에서도 확연히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여성 운전을 허용하면서 얼굴까지 가리던 차도르를 벗어던졌고, 남자 교통경찰과 자유롭게 이야기 하게 되면서 엄격하게 내외하던 남녀관계에도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여성 국회의원이 생기고 관공서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날이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수크 무바라키의 밤 쇼핑에서 쿠웨이트 사회의 변화를 읽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나를 초대한 석유화학기술자 무넴도 딸 레일라를 데리고 쇼핑을 나왔다. 시장 곳곳에는 혼기를 앞 둔 처녀들과 부모들이 함께 쇼핑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참 보기가 좋았다. 이것 저것 만져보고 몸에도 갖다 대어보면서 예비신부의 꿈에 젖어있는 레일라의 들뜬 마음이 전해져 온다. 모처럼 딸과 함께 옷감을 고르는 아버지의 표정에도 아랍인 특유의 진한 만족의 웃음이 막 터질듯하다.

그들은 16세가 되면 결혼을 한다. 물론 대학을 졸업하면 20세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과거 여성의 사회진출이 금지되어 있을 때에는 남편이 주는 지참금이 유일한 재산이었다. 지참금은 여성의 노후복지를 위한 일종의 예치금으로 남편이 친정에 지불하는 금액이다. 신부의 용모, 교육, 가문에 따라 그 액수는 일반적으로 남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동시에 지참금은 남편의 일방적인 이혼선언에 대한 생계보호의 의미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이 스스로 경제력을 키워가면서 지참금의 효력도 점점 빛을 잃어가는 것 같다. 일부다처제도 거의 사라져간다. 지참금 지급도 문제지만 첫번째 아내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두번째 부인을 얻기가 쉽지 않다. 교육수준이 높아가면서 이슬람의 근본정신이 일부일처제라는 공감대가 확산되어 가는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무넴 가족은 신부의 옷감과 드레스 천, 시댁에 나누어 줄 약간의 혼수를 준비하고, 보석상에서 미키모토 진주로 목걸이와 팔찌, 반지 세트를 주문했다. 한 때 세계를 석권했던 쿠웨이트 진주는 이제 양식진주와 세계 유명상표에 밀려 버렸다. 다만 골목 사이사이에서 햄버거와 콜라의 간판 밑에서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작은 진주 알과 그 진주로 만든 아기자기한 장식품을 팔고 있는 토박이 쿠웨이트 인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일행은 인근 시장으로 방향을 바꿨다. 우선 올드 바자르에서 향과 장미수를 구했다. 고품질의 캄보디아산 향은 거의 금의 가치와 맞먹는 가격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내 눈 앞에서 이루어진 거래이다.

손님이 오면 그들은 향로에 불을 붙이고 향의 연기를 손님의 얼굴에 쏘이게 하고, 터번과 옷 속에까지 향의 연기를 불어넣는다.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찾아온 손님을 가장 정갈한 상태로 맞이하는 쿠웨이트의 전통의식이다. 좋은 향은 바로 주인의 사회적 지위와 격식을 상징하기 때문에 최고의 향을 사용한다. 캄보디아 산이 으뜸이라 한다.

장미수는 손님이나 주인의 머리에 붓고, 손과 얼굴에 바르는 향수 의식에 사용한다. 가게주인이 뿌려준 강하지 않은 은은한 장미향이 참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무넴 가족의 마지막 시장 순례는 쿠웨이트 최대의 청과물시장인 수크 알-타무르였다. 이름도 모를 열대 과일과 채소들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다.

전 세계의 과일과 싱싱한 채소, 유제품 등이 배나 비행기로 직수입되어 이 곳에 다 모여있는 느낌이다. 아침 일찍 덴마크에서 짠 신선한 우유가 그날 저녁 쿠웨이트인의 식탁에 오르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본의 오만인지 삶의 발전인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최첨단 건물과 고급 자동차가 도시를 채우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나 되는 세계최고의 부자이지만, 쿠웨이트는 아직도 전통적인 삶의 터전인 재래시장을 지키고 있었다. 현대식 건물의 그늘에 가려 있는 전통 혼수품 야간시장
수크 무바라키에서 참다운 쿠웨이트를 만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쿠웨이트 여행의 또 다른 기쁨이었다.

임충섭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lee200@dreamwiz.com (2005.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