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홈

방지일 원로목사

 

<신년인터뷰>  100세 현역 방지일 목사

"우선 자신을 버리고 살신성인 실천해야"

 

"자기 마음을 비우고 남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살신성인'이라고 말들은 많이 하지만 실천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이나 사회생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자신을 따르게 하려면 우선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방지일(方之日) 영등포교회 원로목사가 올해 100세를 맞았다. 1911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방 목사는 1937년 목사 안수를 받아 올해로 목회 활동만 73년째인 현역 최고령 목사다.

 

한국 개신교계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 방 목사의 존재는 특별하다. 그는 125년 한국 개신교 역사의 산증인이며, 한국사의 격변기를 체험했다.

 

방 목사는 평양숭실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평양 대부흥 운동(1907년)의 중심지였던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1869~1935) 목사 등과 함께 전도사(1933-1937년)생활을 했다. 1937년 평양장로회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중국 산둥(山東)성 선교사로 파송돼 21년을 중국에서 선교했다.

 

방지일 목사는 종교 성직자의 본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는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그는 1957년 중국에서 추방돼 한국으로 들어와 1979년까지 영등포 교회 담임목사를 지내고 원로목사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이면 꼬박꼬박 강단에 오르며, 월요일에는 목사 수십 명을 집으로 불러 성경 공부 모임을 한다. 1년에 몇 차례는 외국에 나가 강연을 하고, 새벽기도회에도 빠지지 않는다.

 

강서구 등촌동의 노인 아파트에서 만난 방 목사는 100세로는 보이지 않는 정정한 모습이었다. 양복에 넥타이를 갖추고 꼿꼿하게 허리를 편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국 교회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 목사는 100세를 맞은 소회를 묻자 "특별한 것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지난해 9월 차례로 소천한 고() 정진경(1921-2009)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 고() 김준곤(1925-2009) 한국대학생선교회 설립 목사 등을 거명하면서 "나보다는 더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먼저 갔다"며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진경 목사는 바로 전날까지 나와 이야기했는데 가버렸다"며 아쉬워했다.

 

방 목사는 지난해 후배들이 '방지일목사 기념사업회'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방 목사의 행적을 더듬는 행사를 한 것도, 올해 100세 기념 행사를 할 것도 처음에는 크게 달갑지는 않았다고 했다.

 

"사람의 생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니까요. 내가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면 그뿐입니다. 그저 우리는 소가 송아지를 낳고 또 자라서 송아지를 낳는 것처럼 열심히 살면서 서로 밀어주고 헐뜯지 않고 살아가야지요"

 

건강을 장담하지는 못한다고 했지만 방 목사는 다리가 조금 불편해 밖에서 활동할 때 휠체어를 타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이를 잊은 듯이 정정하다. 고령이지만 "매일 이메일을 체크해 세계 각지에 나가 있는 후배 선교사들에게 답장을 하고, 일정을 조정하며, 뉴스도 읽는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원로이기도 한 방 목사에게 21세기 첫 1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한국 사회를 향한 조언을 부탁했다.

 

방 목사는 "정치 이야기는 내가 따로 할 것이 없다"고 사양하면서도 "자신을 버리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 목사는 "누구든 나를 따라오게 하려면 우선 나를 버려야 한다. 이는 신앙생활이나 사회생활이나 마찬가지다"라며 "동양 철학자 노자도 매일 자기를 버리라고 했고, 버려야 성자가 된다고 했으며, 예수님도 자기를 버리고 따라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정치계도 자기 마음을 비우고 남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면 '살신성인'하겠다고 말들은 다 하지만 그렇게 실천하지는 못하죠. 나를 위해 살면 그 정도 크기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가족을 위해 살면 그 정도 크기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위해, 인류를 위해 살면 역시 그만한 크기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향해서는 개신교의 교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우려를 하기보다는 먼저 신앙심을 다잡고 목회자들이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꼬집었다.

 

방 목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이처럼 개신교의 교세가 커지지는 못했다. 아이들을 적게 낳아서 신자수도 줄어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게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대신 받았다는 복음의 핵심을 잘 간직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개신교가 250년이나 됐지만 저 모양에 그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불과 125년 됐는데도 이만큼 많은 신자를 확보했습니다. 이는 대단한 일입니다. 일부 목사들이 비행을 저지르고 장로들이 부도 수표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일 뿐입니다. 개신교인 스스로가 '천주교만 못하다'는 등의 말을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세계교회협의회(WCC) 2013년 총회를 부산에 유치한 것에 대해서도 "교회 내에서도 항상 좋은 일과 나쁜 일이 50대 50이다. 하루에 밤낮이 있듯이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기 마련"이라며 교인들이 긴장감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목회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뼈있는 말을 던졌다.

 

"얼굴 잘생기고 목소리 좋은 목사를 쫓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어디 성가대가 잘하더라'는 식으로 교회를 택하기도 하죠. 하지만 목사는 결국 전달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리 재간이 많은 목사라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지요"

 

방 목사는 요즘은 종교에 대한 박해가 없는 시대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며 중국 선교사 시절의 치열했던 목회활동을 회상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산동 선교사'라는 별칭에 대해 방 목사는 "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선교를 했다. 나라도 잃고, 일본 사람들만 있던 그곳에 가서 선교를 했으니 하나님이 어쩌면 이적(異跡)을 행하신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소수민족이 사는 중국 변두리에 가서 선교를 한 것이 아닙니다. 공자, 맹자 사상의 뿌리가 있는 산동에서 선교를 한 것이에요. 당시 우리 원로들이 '우리가 중국에서 문화를 전수받았으니 우리가 돌려주자'라고 해서 갔어요. 선교의 동기가 얼마나 고상했습니까. '선교가 뭔지 모르고 갔다'고 하는 사람들 있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신앙을 가졌다고 인두로 피부를 지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방 목사는 지금도 성경 공부를 계속 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의 유언은 항상 되새기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며 "성경을 더 열심히 보고, 더 열심히 활동하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 목사의 집안 곳곳에는 미국에 사는 증손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미국에 사는 방목사의 외아들인 재미사학자 방선주(75)박사는 미국국립문서기록청(NARA)에서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태평양 건너 살아 아이들을 자주 보지는 못한다"고 담담하게 미소 지은 방 목사는 "올해도 6월에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 기념 대회 등 참여할 행사가 많다"고 바쁘게 지낼 한 해를 소개했다.

 

방 목사는 서울교회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열리는 에든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개회 연설을 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20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