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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일 원로목사

 

 

방선주 박사에 관하여

 

NARA 터줏대감 방선주 박사

부친 방지일 목사 이어 부자 '국민훈장'

한국근현대사 자료집만 150만건 300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99년 무렵 국내 근현대사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재미사학자 방선주(方善柱. 73. 워싱턴 거주) 박사에 대한 국가서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근현대사 자료정리에 기여한 그의 지대한 공로 때문이다. 하지만 방 박사는 "훈장 받으려 한 일이 아니다"며 이를 거부했다.

 

그런 그가 최근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지난 달 7일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교육인적자원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06년도 국민교육발전 유공자들에 대한 국민훈장 수여식에 방 박사는 부인과 함께 참석했다.

 

그의 독특한 이력에 비춰볼 때 이날 국민훈장 수훈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 달이 가까워 오는데도 관련 학계에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방 박사의 부친은 올해 97세인 방지일 목사. 9년 전인 1998년에는 방 목사가 이미 기독교계 대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므로 부자가 국민훈장을 받은 드문 기록도 세운 셈이다.

 

그에 대한 국민훈장 서훈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추진했다. 건국대 신복룡 교수를 필두로 고려대 사학과 대학원 동료인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위원장, 전기호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장,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  유영구 명지학원 이사장 등도 힘을 보탰다.

이런 면면들에서 방 박사가 이룩한 업적의 일단이 드러난다. 그는 한국근현대사 관련 사료의 보물창고라고 일컫는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숭실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도미한 그는 1973년 워싱턴대학에서 석사학위, 1977년에는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중국 서주(西周)시대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고도 미국 내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자 1979년 이후 NARA '둥지'를 틀었다.

 

그는 직원으로 취직한 것이 아니라 자료관 일반 이용자의 한 사람으로서 NARA 직원과 같이 출근해 문을 닫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한국근현대사와 관련한 자료조사와 수집이라는 한 우물을 파게 된다. 이후 서울 동대문운동장 16 배가 된다는 자료더미를 뒤져 복사하는 일상을 지금까지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찾아낸 자료 중 정식으로 간행된 것이 올해 3월 현재 무려 300 책을 헤아린다. 1999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났을 때 방 박사는 자신이 발굴한 자료가 150만 건 정도 된다고 했었다.

 

그가 발굴한 자료를 가장 요긴하게 이용한 저명한 연구자로는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와 일본의 와다 하루키 교수 등을 들 수 있다. 한국근현대사 연구자 가운데 그가 발굴한 자료를 이용하지 않는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중에 미군이 습득한 이른바 '북한군 노획문서'라든가 미군 측 자료, 중국군 관련 문서 등은 한국현대사를 새로 쓰게 했다. 이 외에도 광복 직후 미군정의 방대한 자료, 미국 특수부대 OSS의 관련 문건, 독도에 관한 연합군 자료, 일본군 위안부 운영과 관련한 문건 등 그가 자료를 발굴해낼 때마다 한국근현대사는 요동을 쳤다.

 

그가 발굴한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와 한림대,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 등을 통해 간행되곤 했다.

 

이런 방 박사가 지금껏 갖고 있는 공식직함이라고는 국사편찬위원회 국외사료조사위원 정도 뿐이다. '돈벌이'가 안 되는 이런 활동을 위해 방 박사는 자그마한 미국 대학에 자리 잡은 부인 정금영 씨의 내조에 의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윤덕영 편사연구관은 "선생이 걸어온 지난 시기의 역경과 노력, 업적에 비해 이번 서훈은 뒤늦은 감이 있다"면서 "많은 연구자와 국내 자료수집기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도 이를 방관해 왔던 것이 아닐까 자문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