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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일 원로목사

 

 

"원수는 안에 있는 시대 원망 말아야"

 

97 국내 최고령 목회자 방지일 영등포교회 원로목사

 

"불황이니 침체니 시대를 원망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원수는 바로 내 안에 있죠. 나를 다스리고 정복해야 덕을 세울 수 있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교회 방지일 원로목사(97)를 서울 등촌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 모두가 '내 탓이오'를 외칠 때 불신과 불확실성 시대의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 목사는 국내 최고령 목회자로 한국 기독교 장로교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한국 근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방 목사의 얼굴에 주름살로 새겨져 있다. 나라의 존망이 걸렸던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묵묵히 지켜봐 왔던 방 목사는 현 사회의 위기는 그저 작은 풍랑일 수도 있다고 전한다. 그는 "성경의 야고보서를 보면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이른다는 구절이 있다. 현 경제 위기도 인간의 욕심에서 출발한 것"이라면서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잘못한 게 없는데(미국발) 금융위기가 왔기 때문에 자꾸 잘못을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서로 믿지 못하고 대통령에게도 막말하는 세태가 경제위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의 목회 인생 70년을 반추해 보면 '모든 원인을 내 안에서 찾으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그의 삶은 끊임없이 외부 변수에 의해 변형돼 왔기 때문. 1911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방 목사는 평양신학교 졸업 이후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를 거쳐 1937년 목사 안수를 받는다. 학창시절부터 일본 경찰의 감시 아래 신앙생활을 했고 월간지 '겨자씨'를 간행하는 등 전도활동 때문에 수시로 유치장에 끌려가기도 했다.

 

1937년 중국 산둥 선교사로 파송 됐지만 여기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와 맞닥뜨린다. 21년간 중국에서 사역하는 동안 공산당의 핍박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는 것. 방 목사는 "성경을 압수하는 것은 물론 내 앞에서 보란 듯이 성경 종이로 담배를 말아 피우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때가 가장 분했다"면서도 "그래도 나는 중국을 위해 기도했고 당시에는 중국 사람이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항상 매사에 목숨을 걸고 임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국 중국으로부터 추방당한 이후 한국에 와서 영등포교회에 정착한다. 지난 1979, 21년 동안의 담임목사 자리를 내놓고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활동은 현재진행형이다. 백수(白壽)를 눈 앞에 뒀지만 1년 중 150일 넘게 해외에서 각종 집회 강사로, 국내에선 매주 월요일 '월요성경공부'와 일요일 교회 순회 설교를 통해 기독교 신자들과 호흡한다. 50년 넘게 진행된 '월요성경학교' 2000여 명의 신자들이 방 목사를 만났다. 그는 "목사는 목회를 직업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서 "비단 목회자에게 한정되는 얘기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집과 주관을 버리고 무장해제가 될 때 비로소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1972)과 임원 등을 역임하며 한국교회 발전에도 앞장섰던 방 목사는 "70년대만 해도 한국에는 장로교와 감리교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 교인들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교파가 많아졌다. 해외에 나가서 들어보니 세계 50대 대형교회 중에 한국 교회가 절반이라고 하더라"면서 "그러나 교회가 많아지는 만큼 사회에 덕을 못 쌓고 있고 교파 간에 시기와 질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뿐만 아니라 남이 잘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끝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에 굴복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방 목사는 "인생의 절반은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면서 "성경 속 바울 사도가 종교적 핍박이 예상되는 로마로 떠났듯이 우리 모두가 각자의 '로마'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문일호기자 / 사진 = 김성중 기자] 매일경제  (2008년 11월 20일)